오늘 그림은 실패 5회, 이동과 변형은 0회, 실행 취소 6회, 일치율은 50%로 마무리했다. 아직 라이브드로잉에서 데생에 변형이 있는 표현을 구사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많이 느낀 그림이었다.
그리드에 맞춘 구도
이번 그림은 유독 9등분 그리드에 어느 정도 잘 들어맞게 나왔다. 특별히 여자가 머리, 가슴, 배(?)로 잘 나뉘었고, 남자도 굳이 끼워 맞춘다면 눈과 승모 상부 정도가 각각 위아래 3등분에 위치하면서 알맞게 들어갔다. 여자와 남자가 세로축에도 얼추 비슷하게 들어가면서 거기에 이글이글 효과도 왼쪽 세로축에 걸쳐서 그림 전체 느낌에 리듬을 주게 되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머리 크기를 이렇게 정하면 똑바로 서있을 경우에는 결국 이런 등분이 되겠구나 싶었고, 덕분에 앞으로도 여자가 이런 비율로 나오게 그리고 싶다면 머리 크기를 어떻게 정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다.
완성한 그림에서는 눈 크기가 크지 않고 흰자위만 있어서 시선 처리나 눈 위치는 그렇게 상관은 없었는데, 만약 처음에 구상한 그대로 나왔다면 시선 처리만큼은 좀 더 신중하게 그려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원래 구상하기로는 얼굴도 악마처럼 무섭게 변형돼서 효과가 엄청 들어간 느낌이었고 지금보다는 약간 앞으로 튀어나온 구도였기 때문이다. 아니면 지금보다 한참 더 숙인 자세였을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시선이 자연스럽게 배를 향해서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오늘은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지 집중력이 초반부터 떨어져서 오른손이나 왼 어깨 등이 무너지는 경향을 보였다. 그래서 다른 신체도 전부 약간씩 안 좋은 방향으로 영향을 받기도 한 듯하다. 얼굴은 악마 변형으로 못 그렸어도 어깨나 팔 정도는 원래 구상대로 근육질로 제대로 그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위트는 아직
이번 그림에서 가장 큰 아쉬움은 뭐니 뭐니 해도 '처음부터 구상과 완전히 어긋났다는 점'에 있는 듯하다. 물론 그냥 못생기든 말든 근육질 악마로 그렸다면 그대로 나오긴 했겠지만, 내가 원한 건 관능적인 면도 남아있는 근육질 악마 얼굴이었으므로, 라이브 드로잉에서는 그 정도를 구현할 실력이 없었다는 게 이번 구상의 패착이 아닐까 싶다. 실패한 5장 모두 결국 그냥 얼굴이 마음에 안 든 거였으니까 말이다. 물론 한 3, 40장 그리면 가능했을지도 모르겠지만, 도저히 그렇게는 할 시간이 없으니 지금 실력으로는 이 구상대로 그리기 어렵겠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냥 일반적인 화난 얼굴로 그림을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고, 이런 실망감은 집중력 저하로 나타나 그림 퀄리티 전반에 영향을 미친 것처럼 보인다.
역시 뭔가 위트 있게 변형하는 그림은 진짜로 그리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라이브 드로잉으로는 일반적인 데생에 맞춘 그림을 거의 자유자재로 그릴 수 있어야 그런 그림에 겨우 도전해 볼 수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그렇다면 도대체 언제 그런 그림을 그려보지? 하는 걱정도 들었다. 물론 단지 내 기질 자체가 그런 그림을 잘 못 그리는 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좀 어이없긴 하지만, 이번 그림으로 라이브 드로잉에서는 그런 변형이 그리기 어렵다는 점을 깨닫게 됐고 무의식이 그러한 애로사항을 인지했으니 오늘부터는 머릿속에서 뭔가 화학작용이 일어나서 다음에는 좀 더 편해지는 건 아닐까 하는 희망회로도 돌려본다.
옆구리만 잡았어도?
그림에서 딱 하나만 고치라면 배 앞쪽보다 옆구리를 잡게 하고 싶다. 옆이 아닌 앞쪽을 잡은 데다가 손도 너무 작고 그냥 골반 전체를 다 너무 작게 그리는 바람에 알아보기 어려운 그림이 되고 말았다. 배가 축 늘어진 느낌만 제대로 살렸어도 알아보기는 쉬운 그림이 됐을 텐데 아쉽다. 소품은 그럭저럭 괜찮았고, 약간만 여유가 더 있었다면 샌드위치 부속을 남자 얼굴 앞에 걸쳐서(얼굴이 아닌 머리 위로 흩트렸다면 배경 효과를 못 그려서 그림이 더 안 좋아졌을 것이다) 아주 약간 더 유기적인 느낌을 더해줬으면 어떨까 싶다. 가슴 모양이나 위치는 이 그림 분위기에서는 적당한 듯하고, 먹도 전체적으로 구린 그림을 그나마 느낌 있게 바꿔주고 있어서 마음에 안 들지는 않는다.
다른 데가 좀 망한 느낌이어서 머리카락을 그릴 때는 집중했는지 모양이나 흐름은 제대로 나왔고, 아마 생각을 그대로 구현할 수 있었다면 이 모양에 그대로 붓질한 느낌을 더해서 엄청 화려한 그림을 완성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서 잘 나온 게 안타깝다. 남자는 사실 실패 그림보다는 훨씬 근육질로 그리고 싶었는데 손을 거의 아기손으로 그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비슷한 몸집으로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림에는 왜 이렇게 고려할 게 많은지... 정말 쉽지가 않네. 다음에 혹시 이런 종류 그림에 다시 도전한다면 구상을 좀 더 신중하게 하도록 해야겠다.
오늘 있었던 실행 취소는 당황하는 땀 효과(몸 바깥에 그린)였다. 그림을 다 그리고 약간 심심한 듯해서 남자 얼굴 앞에 6방울을 나란히 찍어보고 너무 별로여서 롤백했다.
*본 포스팅에 첨부한 .clip 파일은 카피레프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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