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라이브 드로잉 #34 - 쉬운 구도, 유기성 향상, 여전히 흐릿한 인식

dbw84 2024. 1. 20.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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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drawing #34

 

오늘 그림은 실패 0회, 이동과 변형은 0회, 실행 취소 1회, 일치율은 60%로 마무리했다. 애초부터 쉬운 구도였기 때문에 실패는 없었지만, 여전히 인체를 흐릿하게 아는 점은 문제로 남았다.

 

쉬운 구도

이번 그림은 9등분 그리드에는 비교적 잘 맞게 나왔다. 처음부터 눈을 딱 등분점에 두고 그렸기 때문에 다른 부분을 굳이 맞춰서 그리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등분에 맞게 그려진 데다가, 원래 이렇게 맞춰서 그리면 결국 다른 위치는 어떻게 그려도 의미 부여만 잘하면 좋게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작업은 구도 잡기가 심리적으로 정말 편했다. 사실 얼굴을 그리고 나서 다른 부위는 딱히 머릿속에서 위치를 잡으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그렸는데(그래서 데생이 부정확하게 나온 면이 있고 옆가슴과 흉곽이 이어지는 부분 같은 경우는 크기가 조금 작아진 면이 있지만), 그런데도 결과물이 다른 그림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은 스트레스에서 나올 정도로 이번 구도 자체는 그리기가 정말 쉬웠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림이 완전하게 잘 나왔다는 건 아니고, 지금은 눈, 그리고 어깨 쪽 쇄골 끝이 등분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만약 그림을 약간 오른쪽으로 옮겨서 눈과 '어깨뼈'가 등분점에 딱 들어맞게 위치했다면 등 뒤 요소들도 좀 더 큼직하고 유기적으로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했다.
머리 같은 경우는 너무 얼굴 중심으로 생각하면서 무심코 눈을 그리기 시작하는 바람에 꽤 넓은 면적을 차지하게 됐는데, 얼굴이 예쁘게 나왔기 때문에 싫지는 않았다. 다만 한 2/3 정도로 줄여서 몸 전체와 특별히는 유두가 나오는 구도로 그렸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얼굴은 확실히 연습한 그대로 나와서 기분이 상당히 좋았고, 어차피 60개 그리기는 계속할 테니 본 작업과 연계해서 남은 라이브 드로잉 6장은 모두 이 얼굴로만 그리는 건 어떨까 하는 상상도 해보게 되었다. 이게 숙인 얼굴이긴 하지만, 얼굴 각을 돌리면 서있는 자세나 다른 자세도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에 얼굴 각은 이대로 유지하면서 라이브 드로잉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기성 향상

이 그림을 그리면서 떠올린 건 이전에 유튜브에 올린 라이브 드로잉(당시에는 '한 번에 그리기'로 올렸다) 네 번째 그림이었다. 그냥 얼굴을 크게 그리고 나서 나머지는 실력 향상에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이상한 요소로만 가득 채운 그림이었는데, 사실 이 작업도 그 그림과 비슷하긴 하지만, 그래도 실력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서 이번에는 인체를 생각하면서 그걸 그대로 기계로 바꿔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로 그림을 채웠다. 물론 인체는 좀 아쉬운데, 그래도 견갑골에 이어진 근육을 들어 올려 수리하는 부분은 확실히 내용 면으로도 의미가 있고 그림 면에서도 마음에 들게 표현한 것 같아서 이 그림에서 좋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확실히 그 부분은 모든 요소가 구도상에서 전후로 교차하는 구성이 많고 모양이 리듬감 있게 배치되어서 불명확한 어깨와 흉곽에 비해 훨씬 나은 표현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여기에 묘사를 더해서, 저 견갑골에서 나오는 근육(이름을 몰라서 계속 이렇게밖에 못 부르겠다)이 원래 어깨 쪽에 어떻게 붙어있었는지를 알 수 있는 어떤 부위를 섬세하고 구체적으로(마치 소켓처럼) 묘사했다면 아마도 일치율을 10%는 더 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만약 그랬다면 별로 유기적이지 못한 어깨 부위 묘사도 덮을 수 있을 정도로 그림이 예뻐졌을지도 모르겠다. 이 인체 기계화 콘셉트는 자주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일회성 주제와는 다르게 계속 시도할 소재인데, 앞으로도 근육 소켓에 관한 개념은 제대로 가져가보는 게 디자인 면으로도 좋고 공부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흐릿한 인식

조금 변명을 하자면 애초에 머리를 너무 크게 그려서 이렇게 된 면도 없지 않지만(흉곽이 전부 나오게 하고 싶어 하면서 그림이 조금 더 이상해졌다), 솔직히 척추나 갈비뼈 형태는 뭐 거의 형편없는 수준을 보여준다. 게다가 모든 요소요소를 결국 펜선으로 뭉개면서, 어깨에 한해서는 형태만 이상한 게 아니라 유기성도 굉장히 떨어지는 결과물이 나오고 말핬다. 근육이 윗팔뼈에 이어지는 부분은 전혀 공부가 안 돼있고 경추는 아예 잘못 그려서 나중에는 스리슬쩍 경추 아닌 척으로 때워버렸으니... 기계손은 뭐 말할 것도 없고 인체로만 봤을 때는 너무나도 부끄러운 그림이 나오고 말았다.
만약 여기서 다른 단점을 다 커버하고 싶었다면 어깨뼈 끝단을 완전히 툭 튀어나온 구도로 도드라지게 묘사하는 게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야 들었다. 결국 이 그림에서 핵심은 어깨 부위이기 때문에 뼈 끝이 9등분 그리드에서도 딱 등분점에 위치하면서 디자인도 명확하고 그림자까지 깔끔하게 떨어졌다면(지금은 팔 그림자 자체가 엄청 어정쩡하고 모양이나 방향, 콘셉트 중 어느 하나에도 충실하지 못하게 나왔다) 아마도 다른 단점을 충분히 덮고도 남았을 것이다. 혹은 지금처럼 어깨를 신경 쓰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흉곽 앞쪽 피부 절개면 느낌을 어깨 아래쪽 겨드랑이 부위에 깔끔하게 넣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만약 절개로 콘셉트만 잘 잡았다면 옆가슴을 강조해서 관능적인 느낌도 주면서 유기성까지 잡는, 지금보다는 훨씬 나은 그림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작업은 그래도 라이브 드로잉 초기보다는 훨씬 나아진 점, 보통 그림보다는 많은 작업량과 마음에 들게 나온 얼굴 때문에 일치율을 10% 더 줬다. 엄청 쉬운 구도에서 처음으로 이 콘셉트를 실험했는데, 그림이 잘 나오고 어떻고를 떠나서 앞으로도 도움을 많이 받을 만한 재미있는 '놀이'를 발견한 것 같아서 즐거웠고 다음 작업들이 기대된다. 이번 작업에서 실행 취소는 머리카락 한 올이 가슴골 선과 겹쳐서 그림을 완전히 망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했다. 다음에는 조심하자.

 

240120 croquis
240120 croquis.clip
2.10MB

 

*본 포스팅에 첨부한 .clip 파일은 카피레프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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