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라이브 드로잉 #37 - 연습 방법 고민, 라이브 드로잉의 묘미, 특별함을 더하려면

dbw84 2024. 1. 27.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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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drawing #37

 

오늘 작업은 실패 2회, 이동과 변형은 0회, 실행 취소 0회, 일치율은 60%로 마무리했다. 평범한 아이디어와 구도여서 특별할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그렸는데, 결과물이 약간은 게으르지 않았나 싶은 퀄리티로 나온 것 같아서 조금은 아쉬웠다.

 

연습 방법 고민

이제 곧 원고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듯한데, 식사 후에 하는 이 크로키 연습과 라이브 드로잉 연습을 좀 더 루틴화하기 위해서는, 그러니까 본작업에 영향을 덜 미치도록 생각을 많이 안 하면서(에너지를 덜 쓰면서)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요즘 고민하고 있다. 지금은 머리, 전신을 번갈아가면서 연습하는데 이게 예전처럼 매일 하는 게 아니라서 텀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머리를 그리면 전신이 잊히고 반대로 전신을 그리면 머리가 잊히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차라리 머리와 전신 각각 6개씩 12개를 한 번에 연습하고 그렇게 원래보다 크로키하는 시간이 1시간 정도 길어지는 만큼, 라이브 드로잉은 무조건 그 얼굴이랑 포즈 안에서만 그려서 구상하는 시간도 줄이면서 연습하는 효과는 좀 더 늘리는 방식으로 가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오늘 같은 그림이 가볍게 떠오르면 그런 날은 꼭 머리나 전신을 연습한 대로 그리지 않고 떠오른 주제로 그리기도 하면서 말이다. 이제 곧 라이브 드로잉 40개를 채울 텐데 그 이후에 지금 생각한 대로 루틴을 바꿔보고 결과를 지켜보면서 계속 유지할지 어떻게 할지를 결정하는 게 좋을 듯하다.
머리 6개를 모두 여자로만 하지 말고 남녀 각각 3개씩 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면 좀 에너지가 떨어지긴 할 것 같아서 그렇게 하지는 않을 생각인데, 원고는 사실상 거의 남자밖에 안 나와서 조금 고민이 되긴 한다. 물론 여자를 외우고 나면 어느 정도만 변형해도 남자처럼 사용하는 게 가능하긴 한데 중요한 장면에서 얼굴을 엄청 크게 클로즈업해야 할 때는 또 이야기가 달라져서, 확실히 남자만 따로 연습하는 게 필요하긴 한데 여자는 또 놓치긴 싫고... 아무튼 연습 방법에 대한 고민이 많다.

 

라이브 드로잉의 묘미

failed drawings

 

이번 작업에서 손은 반드시 저기에 위치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드로잉을 손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손을 조금 작게 그리기도 했고, 실제 구상으로는 손이 정가운데 높이가 아니라 위에서 1/3 위치였어야 해서 몸이 생각보다 작게 나오고 말았다. 원래 9등분 그리드에서 손수건이 정확하게 위쪽 등분선을 가로로 타서, 손수건이 아닌 유두가 가운데 높이에 왔어야 구상과 맞았을 텐데 첫 위치 실수로 그림 자체가 애매하게 나오고 만 것이다. 물론 원래 구상대로 얼굴이 거의 나오지 않고 턱 정도만 나오면서 몸을 크게 강조했다면 쾌감은 더 커졌겠지만, 배경에 그리려고 했던 얼굴은 이번처럼 그릴 수가 없었을 거라서 막상 몸이 그렇게 구상대로 잘 그려졌다면 마무리가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긴 하다. 경험치가 적으니 사실상 구상에서부터 충돌이 있었던 셈이고, 그렇게 이번 작업은 가운데 사람은 아쉬운데 배경에 들어간 얼굴은 구상과 일치하는 묘한 작업이 되고 말았다.
이번 그림은 9등분 그리드를 아예 그대로 옮겨놓았다는 면에서는 기본을 잘 지킨 좋은 그림처럼 보이기도 한다. 재미있는 건 처음 손을 그릴 때 내비게이터를 잘못 만졌는지 캔버스 오른쪽 끝을 약간 가린 상태에서 거기가 끝이라고 생각해서 손을 살짝 안쪽에 그렸고, 덕분에 최종적으로는 여자 위치가 아주 약간 왼쪽으로 쏠리게 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배경에 들어간 얼굴이 약간 더 살아나게 되었는데, 이런 게 어떤 의미에서는 라이브 드로잉의 묘미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물론 나는 만화 원고 작업을 위해 라이브 드로잉을 연습하는 거라서 별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쩌면 만화를 연출하거나 구상할 때 아예 라이브 드로잉까지 염두에 두고 연출한다면 혹시라도 의미가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은 있는데... 그건 아마도 아주 먼 미래에나 생각해야 하는, 지금 내게는 다소 주제넘은 생각이 아닐지.

 

특별함을 더하려면

진짜 그림 실력은 아주 역동적이고 극적인 그림에서보다 이런 평범한 구도와 자세로 그린 그림에서 더욱 드러나는 것 같다. 솔직히 라이브 드로잉이라서 이런 평범한 각도와 평범한 자세도 어느 정도는 용인될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작업에 들어간 게 보여서 조금 아쉽긴 하다. 이 그림에 특별함을 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내게 이 그림을 수정하라고 한다면 뭘 더 어떻게 바꾸면 좋을까. 흉곽은 아주 약간 뒤로 젖히면서 어깨 라인을 지금보다 좀 더 섬세하게 묘사했어야 하고, 만약 손수건 높이를 위에서 1/3 지점에 정확하게 맞췄다면 각도는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여서 뒷배경에 얼굴이 들어갈 공간도 마련하면서 그림에 리듬을 더해주었을 것이다. 복장도 자료를 참고해서 디테일을 좀 더 넣어주거나 도저히 외우기가 어려우면 질감이라도 좀 더 세밀하게 넣어줬다면 어땠을까. 손수건(너무 크긴 하지만)에서 떨어지는 동전은 칩으로 바꿨다면 지금보다 나았을까? 이건 솔직히 어땠을지 판단이 안 선다. 내 취향으로는 그냥 지금이 나은데, 그림의 통일성이나 유기성에 영향을 아주 약간이라도 더 주고 싶다면 동전을 칩으로 바꾸는 것도 나쁜 선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라이브 드로잉을 해보기 전에는 솔직한 심정으로 왜 항상 과장된 구도로 그리는지가 조금 의문이었는데, 이제 조금 해보니 평범한 구도는 진짜 상상 외로 더욱 어려워서 어쩔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원고를 라이브 드로잉으로 했다는 아키라 토리야마 같은 사람은 진짜 어느 정도 레벨인지 감이 오질 않는다. 해보니까 그렇다. 제발 원고가 가능했으면 좋겠는데, 과연 꿈은 이루어질까.

 

240126 croquis
240126 croquis.clip
2.30MB

 

*본 포스팅에 첨부한 .clip 파일은 카피레프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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